✂️ 미술관 🎚️ 믹스 💿|🔊 museum 🎹 mix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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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듣기에 좋은 공간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술관의 소리 환경은 어떠한가요? 요즘의 미술관에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영상이나 설치 작품이 만드는 사운드, 관객들의 소곤거림과 뚜벅거림, 작품을 지키고 전시장을 관리하는 이들의 침묵. --세마 코랄

《미술관 믹스(Mix)》는 세마 코랄의 제안으로 미술관을 구성하는 청각적 요소들을 탐색하는 다이애나밴드의 웹프로젝트입니다. 어떤 소리들이, 어떻게 구성될 때, 우리들의 몸의 기억은 그것이 ‘미술관’스럽다고 말하는지 궁금해요. 하지만, 동시에 각자 몸의 경험에 따라서 달라지는 낯설지만, 가장 진솔한 ‘미술관’스러운 소리 환경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미술관 믹스(Mix)》 웹사이트에서 미술관의 다양한 장소에서 녹음된 소리를 만나보세요. 재생버튼을 조작하여 장소와 사건을 섞어 보셔도 좋습니다. 소리는 다이애나밴드가 2022년 9월 16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녹음한 자료입니다. (혹시, 지나가는 말소리가 내 것 같아서 부담을 느끼신다면 주저 없이 jjk2021@seoul.go.kr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미술관 믹스 버튼 사용법
동그란 버튼을 탭/클릭하여 (위)네 가지 장소를 설정하거나 (아래)여러 소리를 재생할 수 있어요.
파란색 버튼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표시입니다.
버튼을 클릭하면 노란색으로 바뀌고, 그 소리가 재생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다시 클릭하면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소리가 들리기를 멈춥니다.
올리브색 버튼은 다이애나밴드가 네 가지 장소(앞마당, 로비, 전시실, 카페)와 연결지어 들어보길 추천하는 소리에요.

각자 마다 미술관에서의 소리 경험, 기억들이 다를텐데요. 《미술관 믹스(Mix)》 웹에서 소리경험에 대한 온라인 설문의 내용과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예술가들와 이야기 나눈 인터뷰를 읽어보실 수 있어요.

온라인 설문 응답 내용 보기
미술관 좋아하세요? | 김진주와의 인터뷰
수장고에서 리듬 | 박현과의 인터뷰
청취방식 | 오로민경과의 인터뷰
시각적인 소리풍경 | 김은설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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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에 방문하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그곳에서는 보통 무엇이 들리나요?

❔ 미술관에 머무는 시간동안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예. 발자국소리)

❔ 미술관에서 자주 들을 수 없는 특별한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나요? 어떤 소리였나요? (예를 들면, 귀뚜라미가 미술관에 들어와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든지...)

❔ 미술관에서 가만히 귀기울여 들을 때는 언제인가요? 어떤 소리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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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좋아하세요?

인터뷰 | 김진주

참석자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다이애나밴드 신원정, 이두호

원정: 진주 씨는 미술관 좋아하세요?

진주: 왠지 “미술관 좋아하세요?”라는 말은 저한테는 그 질문은 “미술관 자주 가세요?”라고 들리는데요. 저는 요즘 미술관에 매일 출근하고 있죠. 소리가 나는 출입카드를 대야 통과할 수 있는 문 하나로 미술관에 저의 사무 공간이랑 전시 공간이랑 나눠져 있어요. 정말 종잇장 한 장 같은 경계인데, 그것을 넘어서 온전히 관람객이 되기는 힘들어진 거죠. 미술관을 좋아했던 생각이 약간은 희미해진 것 같아요. 이건 작품이 말하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제게서 사라진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정: 몸이나 감각이 닫힌다고 말해도 되나요?

진주: 어떻게 보면 눈이 닫히는 거일 수도 있네요.

원정: 어떤 작업을 보면, 눈이 열린다거나, 시각적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미술관에서 귀가 열리는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요. 작품과 만났을 때일 수도 있고, 미술관에서 모든 순간 작품만 관람하는 건 아니니까, 미술관 공간 안에서 흥미로운 청각 경험이 있는지 여쭤 보고 싶어요.

진주: 원래 제 귀가 바로 옆에 있는 소리는 못 들을 때도 있지만, 멀리 있는 소리는 잘 듣는 편이긴 해요. 일상 속에서 저쪽에 걸어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있다면, 멀리 있는 공간의 감각대로 그것이 잘 들려오는 편이에요. 미술관은 들어오면, 많은 ‘소리공간들’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요.

진주, 원정:(동시에) 지금도! (바닥재와 운동화가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삑, 삐익~’하고 들려온다.)

진주: 미술관의 문들은 전시장의 문들은 닫혀 있지 않잖아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러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이렇게 순례하면서 이동하는 공간이고, 다 열려 있어서 소리도 그런 방식으로 계속 타고 넘나드는 곳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는 오히려 열린 감각을 닫아야 작품을 보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측면도 있어서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말거나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바깥에서 들으면 흩어질 소리들도 미술관에서는 계속 이렇게 돌아다녀요. 어떤 입자가 제한된 영역 안에서 ‘탱탱탱탱탱탱...’하고 계속 튕기고 있는 듯한 느낌, 무언가 쉽게 소멸되지 않고 느낌이 들어서 미술관은 저에게 청각적 피로감을 줘요.

두호: 갑자기 생각났는데 미술관에 귀뚜라미 들어온 적 없어요?

진주: 이 미술관에서는 아니었지만, 다른 미술공간에서 일하면서 한번 본 것 같아요. 주택가에 있는 작은 미술공간들에는 주변 환경 때문에 귀뚜라미가 들어오는 경우들이 생겨요.

두호: 뭔가... 그래도 이 미술관에도 귀뚜라미 같은 것도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뭔가... 귀뚜라미를 어떻게 내쫓을까요? 귀뚜라미는 딱 한 마리만 있어도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잖아요.

진주: 생각해보면, 여기 미술관 바로 앞에, 앞마당에, 산책로에 보면 여름철에는 매미가 허물 벗거나 일생을 마감하고, 바닥에 이렇게 죽어 있는 거 많이 보거든요. 그렇지만 미술관 안은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서 공간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고 그러니까 청소 세제들도 사용할 거예요. 그렇기에 귀뚜라미들이 잘 오지 않는 것 같아요.아마 귀뚜라미가 들어오더라도 미술관 지키시는 선생님들이 빨리 쫓아내지 않을까요.

원정: 미술관에 있는 공간들마다 기본적으로 배경에 깔리는 소음의 느낌이 다 다르잖아요. 뭔가 어떤 공간에서의 백색소음은 적응할 수 있거나 좋아한다는 곳이 있을까요?

진주: 몇 가지가 떠올라요. 먼저, 미술관에는 보통 북샵, 책방이 있잖아요. 그 공간에서는 귀가 좀 편한 것 같아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책방에 들러서 일까요? 미술관 서점 같은 곳에서는 말이나 행동 자체를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돼요. 조용한 게 참 좋아요.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그 책들이 만든 소리가, 뭐랄까, 책이 진공의 소리를 만드는 것 같아요. 무중력 상태 같은 감각을 줘요.

그리고 계단 이동할 때인데요.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음이 만드는 소리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리듬인 것 같아요. 나의 발 소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내 몸이 인지되는 것 같아요.

계단이라는 통로를 이용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미술관의 층이 바뀌잖아요. 한 챕터를 끝내고 다른 스테이지로 가는 기대감, 혹은 약간 여행하는 느낌이 있어서 계단 공간의 소리를 좋아해요. 층이 바뀌면 소리의 스케이프(풍경)도 변하고, 새로운 소리가 다가오고, 내가 있었던 공간의 소리는 멀어지고, 내 발소리를 따라서 가게 되고, 그런 감각이 재미있어요.

어떤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냐에 따라 미술관의 백색소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영상 작품을 볼 때는 오히려 소리가 작품 보는 것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다른 작품과 소리가 충돌하기도 하고요. 외부 소음 때문에 이어폰 혹은 헤드폰으로 소리를 듣는 작품도 많은데, 귀를 막고 있어도 누군가 이렇게 지나간다는 걸 인식하니까 방해받는 느낌은 여전해요. 그래서 소리가 어떻게 들리지, 어떤 감각인지 느끼기 보다는 그것이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에 주목해서 듣게 되는 것 같아요.

확실히 회화 작품을 볼 때는 상대적으로 시야가 경주마처럼 좁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누군가 왔다 갔다 하는 방해를 더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한번 보고 가까이가서 디테일을 체크하면서 작품을 보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면 주변 소리도 조용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미술관에서 소리로만 된 작업들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미술관이 뭔가를 들을 수 있는 환경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듣기 자체가 불편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한편 작업을 더 잘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원정: 그럼 진주씨, 설치미술 작품을 접할 때는 어떠신가요?

진주: 설치를 볼 때는 무장 해제된 느낌이 들어요. 그냥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몸이 던져진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큰 설치 작업 같은 경우에는 그 속에 관람객이 들어갈 수가 있잖아요.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수 있고요. 작품에서 나오는 의도적인 소리는 놓치지 않고 들으려 하는데, 감각의 규모가 커지니까 그 소리도 제대로 못 찾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원정: 다른 질문이에요. 미술관에서 듣기 싫은 소리 환경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진주: 하나를 가려내기 어려운 곳이 미술 공간인 것 같은데요. 갑자기 웅성웅성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조용한 소리가 지속되지 못할 때, 그러니까 작품이 내는 소리 외에 다른 방해 요소가 너무 많다고 느낄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문이 닫힙니다.”같이 화장실, 출입문,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소리들 있잖아요. 그런 것이 작품을 보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듣기 싫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안내 소리’는 누군가한테 꼭 필요한 소리이기도 해요.

아, 또 하나 있어요. 저도 사실 전시장 가서 작품을 찍으려고 사진을 많이 찍긴 하는데요. 요즘 관람객들이 셀카를 너무 많이 찍으실 때, 물론 이것도 또 하나의 감각이 될 수 있어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카메라 셔터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이런 멘트들의 소리가 들리잖아요. “여기 좀 서 봐.” 이런 소리들이 들릴 때, 그럴 때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원정: 미술관을 운영하는 시간 외에, 미술관 문이 닫혀있을 때 좋아하는 소리 환경 있을까요?

진주: 전시 준비로 작품을 설치할 때는 큰 소리가 많이 발생해요. 뭘 떨어뜨리는 소리도 빈번하고요. 그럴 때 되게 안정감을 주는 소리는 사다리차 경고음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물건을 옮기고 저리 옮기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 소리가 들리고 그 와중에 사다리차 경고음이 울리면 순간 조용해져요. 안전을 기원하기도 하는 순간이구요. 그 상황이 생각나네요.

김진주

김진주는 작가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연구를 하면서 웹에서 지식을 나누는 세마 코랄http://semacoral.org을 기획하고 편집도 한다. 이처럼 미술 분야에서 해 온 김진주의 여러 활동의 대부분은 말, 글, 소리, 아카이브 같은 것들에 연결되는데, 공동 작품으로 듣기를 전시장에 들여오는 〈Listening Company〉를 만들기도 했고,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의 메인 진행자(2015~2016)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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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의 리듬

인터뷰 | 박현

참석자
당시 수집담당 박현
다이애나밴드 신원정

원정: 현 씨는 미술관에 방문하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그곳에서는 보통 무엇이 들리나요?

박현: 제게는 미술관이 일을 하러 오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좀 더 강해요.그래서인지 관람객이 없는 월요일의 전시동을 저는 특별히 좋아해요. 관람객이 없으니까 불도 다 꺼져 있고, 전시장 출입문도 닫아 놓고요.

지난 여름이었는데, 비가 엄청 내리는 거예요. 미술관 3층 프로젝트 갤러리 쪽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살짝 움푹 들어간 공간에 벤치가 놓여 있어요. 거기에 앉아 잠시 쉬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유리 천장에 비가 엄청 쏟아져 내려오는 거예요. 그 빗소리에 집중해 버린 그 순간, 제가 밖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소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빗소리가 들리고 부터 여기가 미술관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느껴지면서 기분이 묘했어요.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Rain Room"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그 작품에서 ‘비가 내릴 때 시각, 촉각, 후각까지 다 느껴지는데 정작 비는 맞지 않는’ 체험을 다시금 한 기분이었어요.

박현: 또 하나, 제가 좋아하는 미술관의 공간을 말씀드리자면, 수장고예요. 물론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는 보안구역이어서 관계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들어갈 수 있을 때도 작품을 반입할 때 뿐예요. 저는 디지털 자료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이 순간을 특별히 좋아라 합니다. 미술관에서 수집 담당 코디네이터로서 저는, 어떤 작품들을 영구적으로 소장할 건지에 대해서 선별하는 위원회를 꾸리고, 그 작품들이 미술관까지 와서 수장고에 반입할 때까지의 과정을 돕고 있기도 해요. 꽤 많은 수의 회화 작품이 한번에 수장고에 들어올 때가 있었어요.

여러 작품이 작가의 작업실에서부터 서울 모처에 있는 보존연구소를 거쳐 미술관까지 오는데 거의 7~8개월가량이 걸렸어요. 그동안 그 작품들을 디지털 자료로만 보다가 드디어 미술관에 들어오는 날 모든 작품들을 실물로 한꺼번에 보게 되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작품들을 확인해야 했지요. 작품 하나에 8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분업적으로 수행하면서 작품들을 점검하는데, 굉장히 리드미컬한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어느 작품부터 확인할지 대화가 오고 갔지만, 많은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내려다보니까 어느 순간 저희가 하나가 된 느낌으로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작품을 ‘해포’(작품의 포장을 풀러 설치하기)해서 그에 해당하는 작품 정보를 확인하고, 다음 작품 포장을 풀고, 확인하고… 이때 작품에 박락(긁히고 깎이어서 떨어짐)이 있는지. 조금이라도 부서진 액자가 있다면 체크하고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품 앞, 뒷면 사진을 찍고, 작품을 걸 수 있는 와이어나 끈이 작품에 붙어 있는지 확인해요.

원정: 실용적인 확인이 필요하네요.

박현: 네, 와이어가 없는 작품들을 체크해 뒀다가, 추후에 제작해주어야 그 작품들이 벽에 걸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것들을 다 체크하는 거죠. 그런데 일련의 그 과정들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이 반복적이면서 리드미컬했어요.
이 모습에 음악만 입히면 굉장히 재미있는 영상이 될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지요.
원래는 저희끼리 얘기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하는데, 그날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시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일을 다 해서 뿌듯하긴 했어요. 잊지 못할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그때의 소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처음에는 소리가 잡음처럼 있다가 소리가 하나도 없어지는 그 순간, 그러니까 하나가 된 것 같이 느꼈어요. 감정도 사라지고 결국, 저는 그저 ‘로봇1’이 된 것 같았어요.

원정: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패턴화된 소리가 계속 반복되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박현: 맞아요. 저한테는 들리지 않는 거예요. 작업의 순서가 일련화되면서부터요.

원정: 다음 질문은요. 소리가 포함된 작품을 봤던 기억 중에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박현: 저는 다매체 예술을 좋아하고 특히, 영상매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운드 작업이 설치됐던 전시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전시장이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요. 전시장에 어떤 장소를 녹음해 놓은 음원이 나오는 스피커가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설치되어 있고, 녹음한 장소의 이름만이 태깅되어 있었어요. 작품 중 스피커를 통해 다양한 장소들에서 녹음한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어요.

그 장소들은 제가 굳이 찾아가지 않을 것 같은 장소들이었는데, 그걸 듣고 있었을 때 만큼은 제가 전시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로 이동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원정: 영상 매체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요즘 전시를 보러 다니면, 제가 느끼기에 영상 작업이 많기도 해요. 현 씨가 전시장 관람하시거나, 일 때문에 미술관을 돌아다니실 때, 멀리서 작업들 소리가 먼저 들리잖아요. 어떤 영상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멀리서 소리가 나는데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있다면, 보통 어떤 소리가 나는 작품인가요?

박현: 좀 다른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할게요 제가 엄마와 멕시코 음식점에 간 적이 있어요. 배가 불러서 둘이서 타코 한 접시만 시키고 먹고 있었어요. 그걸 다 먹지도 못했는데 거짓말처럼 한 시간이 지나간 거예요. 왜지? 생각해보니 음식점에서 들리는 제3세계 음악이 너무 흥겨웠고 옆에서 이야기 나누는 소리도 음악 소리에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도 커졌어요. 이때 음악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예요.

그 경험을 비추어 보면, 영상 작업에서도 붕붕거리면서, 비트감이 있으면서, 반복되는 그런 음악이 나오면 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아는 노래가 나오면 뭔가 더 주의 깊게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영상 작품에 등장하는 생소한 음악 사이에 대중음악을 사용할 때도 있잖아요. 이 음악을 왜 썼는지 궁금해하면서 영상에 몰입하게 되는 편이에요.

박현

박현은 비인간 행위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라투르의 철학적 기획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썼으며, 비물질인 데이터로 환원할 수 없는 물질의 습성을 탐구하고 이를 시각예술 분야에 적용한 기획과 글로 풀어내고자 한다. 2021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수집 담당 코디네이터로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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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방식

인터뷰 | 오로민경

참석자
작가 오로민경
다이애나밴드 신원정

원정: 다른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거나 자신의 전시를 위해 설치나 철수할 때, 미술관에 머물게 되잖아요. 오로 씨는 그럴 때 특별히 좋아하는 시간이 있나요?

오로: 저는 제 전시 오픈하기 전에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침에 일찍 가서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소리 듣고 확인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또는 밤늦게까지 작품을 설치하면, 정적이, 그러니까 고요가 찾아올 때가 있거든요. 주변 소리들이 사라지고, 제가 신경 써야 하는 요인들도 줄어들고, 저와 작품만 남겨져 있는 상태이지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서, 혼자서 듣고 있는 그 시간을 좋아합니다.

밤의 고요함에도 소리가 있고, 공기나 기운이 가라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주변에 장치나 기기들도 꺼져 있어서 긴장이 없어진 상태의 미술관이 좋아요.

원정: 오로 씨는 전시를 만들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나요?

오로: 전시공간의 공기 안으로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게 초대하고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관람객이 전시장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신경 쓰는 편입니다.
전시장소를 선택할 때부터 그런 요소들을 먼저 확인하고 선택하려고 하고요. 작품 안에서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꼭 놔둬요. 이렇게 관람객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전시로 만들려고 노력해요.

원정: 다른 작가들이 같이 참가하는 기획전이나 단체전에서 전시를 할 때는 어떤까요?

오로: 공간이 잘 분리되지 않은 상태인 기획전에서는 제 작품의 소리가 다른 작품과 충돌될 수 있으니까 늘 조심스러워요. 소리를 스피커로 내면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을 때도 그 환경이 다른 작업이랑 맞지 않으면 내 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보다는 어느 정도 감춰야 되거든요. 그것이 어려운 점이에요.
이러면 관람객들이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될 때가 많아요.

원정: 오로 씨는 미술관과 관련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냥 던지는 질문인데, 미술관 좋아하세요?

오로: 저는 전시를 보러 갈 때에도 전시 설치할 때처럼 아침 일찍 관람객이 적을 때 미술관에 가는 걸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도 없을 때, 그때의 정적이 좋아요. 혼자 됐을 때 비로소 발걸음이나 집중하는 시선을 느끼는 것이 좋고, 나와 작품, 그리고 공간이 착! 하고 달라붙는 집중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미술관과 연관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미술관을 싫어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인데요. 분명히 미술관에서는 재미있는 기회가 생기고,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철저히 ‘관객이 된 나’로서 생각했을 때, 어느 시점부터 미술관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큰 미술관인데, 동선이 너무 뒤죽박죽이고, 예전에 비해 요즘은 관람객 수도 많아져서 미술관에 조금만 머물러도 피로해집니다. 특히, 미디어 작업들이 전시장에서 많이 보이는데, 설치 환경에 신중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관람객은 쉽게 피로를 느끼게 돼요. 좋아하는 전시장과 미술관하면 떠오르는 건 덕수궁 미술관이나 남서울미술관이에요.

원정: 미술관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하얗게 만들잖아요. 듣는 감각을 돋보이게 하려면 어떤 캔버스, 그러니까 바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오로: 미술관 공간에서는 소리가 반사돼요. 여기저기 소리가 튀니까 공간에서 ‘츠츠으, 츠츠츠, 츠츠츠츠’ 같이 치읓 발음 소리가 잘 들려요.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 찰랑찰랑 거리는 느낌으로 공간에 소리가 가득해서 오래 머무르면, 훌렁훌렁거리는 것 같아요. 소리로 작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리가 이미 늘 배경으로 존재하여 인지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제게 미술관은 강한 노이즈로 가득 찬 공간이어서 피로감을 느껴요. 그래서 저는 창문이 있는 미술관들을 좋아해요. 아까 덕수궁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런 이유인 것 같아요. 창문으로 외부 소음이 들어오는 전시 공간에 머물를 때 흥미로워지고, 전시장 바깥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소음이 작업 관람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원정: 관람객들이 작업을 보면서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환경은 어떤 청각환경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예를 들어, 헤드폰을 쓰게 하거나, 특히, 관람객들이 귀를 기울이기 위해 누울 수 있는 공간 같은 것을 마련해 놓는다거나.

오로: 제 작업 중에 <눈 뒤에, 귀 뒤에 앉아>에서 평평하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는 테이블을 제작한 적 있어요. 관람객은 의자에 앉아 테이블 표면에 귀를 대고 엎드릴 수 있어요. 테이블 아래에 진동스피커가 부착되어 있어서 소리가 테이블을 통해서 떨림으로 관람객 몸으로 전해지면서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이렇게 테이블에 귀 기울이는 새로운 청취 방법을 제안했는데 관람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주셔서 신기했어요. 관람객들이 귀 기울일 때의 자세가 편안했으면 좋겠고, 그 자세에서 무언가 정서적으로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작업을 만들었어요.

예전에도 관람객이 전시장 바닥에 누워서 혹은 벽에 등을 기대어 듣는 방식으로 작업을 제작한 적 있어요. 사람들이 귀 기울일 때의 자세는 서 있거나 혹은 쭈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안락한 소파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듣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듣기에 있어서 다양한 자세와 방식들을 제안해 보면서 귀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로 민경

​​오로민경은 빛과 소리의 현상에 애정을 갖고 듣는 것에 대한 수행, 수련의 과정으로서 소리내기를 시도해보고 있다. [끝의 입자 연구소] 지킴이로써 지층과 우주 사이에 주어진 그리운 감정들을 관측하고 있다. 작은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을 관찰하며 삶에 주어진 현상들을 느리게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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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소리풍경

인터뷰 | 김은설

참석자
작가 김은설
다이애나밴드 신원정

원정: 은설 씨는 좋아하는 미술관, 전시공간이 있나요?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을 특정하셔도 되고요. 좋아하는 전시공간의 조건 같은 것을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은설: 저는 시각적으로 즐거움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데요. 예를 들자면 화이트 큐브가 아닌 기존의 건축이나 인테리어 양식이 남아 있는 공간을 방문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많은 전시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서울시립미술관 중에는 서소문본관이나 남서울미술관도 좋아하고요. 세마창고 같이 하얀 벽이 아닌 전시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원정: 전시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 건물이 가지고 있는 시각요소까지 같이 포함해서 시각적으로 충분히 향유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은설: 네, 흰 벽이 있는 공간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돋보여줄 수 있어서 전시하기에 좋은 공간이지만, 저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질감이 다르거나 패턴이 많은 곳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일수록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전시를 보는데 주변이 과하면 산만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원정: 아, 흥미롭네요. 보통 미술관은 보는 감각이 주로 요구되는 공간이지만, 은설 씨가 작품을 전시하시거나 다른 작가분 작품을 관람하실 때, 시각적인 것 외에 소리나 진동, 혹은 냄새로 작업했거나 관람했던 경험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은설: 저는 사실 전시 관람하러 가면, 소리가 나오더라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에서 나오는 소리의 방향이나, 그것이 어떤 소리인지 알고 싶어요. 소리의 진동을 만지면 감각할 수 있을 텐데요. 제대로 알고 싶어서 전시작품을 가까이 접근하게 돼요. 그렇지만 작품 앞에 더이상 만지거나 접근할 수 없는 거리가 있어서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전시 관람할 때 최대한 시각정보를 활용해서 향유하려고 해요.

소리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제한된 조건에서 작품을 만나게 될 때는 저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가 많습니다. 소리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재미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대신 작품에 후각 요소가 있으면, (정보가 더 생겨서) 후각과 시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즐겁게 생각해볼 수 있어요.

지인들이 하는 전시 중에 사운드 작품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해줘서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물론 조심해서 만집니다. 사운드 없는 작품이면 절대 안 만집니다. 소리 나는 작품을 직접 만져보면 눈으로 본 소리와는 다르게 감각되더라고요. 평소에 전시 관람할 때의 시각적으로 향유하는 방식에 소리의 진동을 추가로 감각할 수 있게 되니, 작품을 조금 더 깊이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렇지만 보통 작품에 소리가 나는데 알지 못하고 지나친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많이 답답해요.

원정:집이랑 미술관 공간을 비교해보면, 집에는 가구도 있고, 옷도 있지만, 미술관 안에는 소리를 흡수할 집기들이 많지 않고, 소리가 벽이나 바닥을 치고, 떠돌아다니잖아요. 바닥재는 대리석일 때가 많고요. 청인으로서 저는 소리들이 떠돌아다니면서 생기는 잔향이 신경 쓰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 공간에 오래 머물러 있기 어렵거든요. 은설 씨는 보청기를 사용할 때, 혹은 진동으로 공간의 소리를 몸으로 느낄 때 전시공간에서 주파수나 진동을 느끼나요? 그것을 좋아하시나요?

은설: 오히려 저는 일상생활 공간의 소리환경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는 어디서 소리가 튀어나오는지 예측할 수 없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요. 미술관 같은 곳의 소리환경은 거슬리지 않아요. 미술관 공간은 작품외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잖아요. 집중해야 할 것만 놓여있어요. 그래서 소리를 집중적으로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미술관 안의 소리 정체와 방향이 확실해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전시 관람할 때 저는 미술관을 만지면서 관람하기도 하는데요.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까, 미술관은 온전히 작품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잖아요? 작품에서 소리가 흘러 나와서 벽이랑 바닥을 타고 전해오는 진동이랑 흐름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을 제가 좋아하더라구요. 진동이 미미할 수도 있고, 어떨 땐 안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소리가 오롯이 저에게로 진동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영상매체가 내뿜는 불빛이라던가 페인팅 작품에서 나오는 아우라, 두 손으로 만지거나, 두 발로 서있기만 해도, 저는 작품이 들려주는 진동을 상상으로 느끼게 돼요.

원정: 의외의 대답이네요. 흥미로워요. 그러니까 전시장에서 순수한 진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군요. 소리환경, 미술관 벽의 진동이 집이랑 다르다고 이해해도 되나요?

은설: 네, 달라요. 집이라면 절대로 영상작품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 것을 집중적으로 크게 틀 일이 없잖아요. 집에서 나는 울림이 다양하다면 전시장의 소리가 울림이 다르고, 작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원정: 영상작업을 관람하실 때, 은설 씨를 계속 영상작업 속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환경, 조건이 있는지 궁금해요. 예를 들면, 영상마다 소리를 다양하게 사용하는데요. 의미 전달을 위해 말소리가 주를 이루거나, 비트 있는 노래가 나오거나, 영상을 촬영할 때 현장 녹음된 소리가 나온다거나, 혹은 영상의 소리를 헤드폰으로 듣거나, 큰 스피커가 공간에 설치되어 소리가 출력되거나. 이렇게 영상작품을 접할 때 작품이 가진 소리의 내용적인 면과 장비 등 다양한 조건들이 제시되는데요. 영상작품을 볼 때 은설 씨에게 흥미로운 조건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은설: 저는 아무래도 영상작업을 관람하는 데 시각적인 요소에 가장 지배되는 것 같아요. 작품에 시각적인 요소, 이야기가 많을수록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은데, 영상 미디어 속에 자막 없이 인물이 말하고 있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가끔 한글자막 없이 영어자막이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요. 영어도 잘 못해서 영어자막으로 아는 단어만 띄엄띄엄 보니까 오히려 인물 표정이랑 배경에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구요. 저 사람이 무슨 감정으로 말을 하고 있을까. 저 배경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장면 하나하나 분석하게 돼요. 청각적인 정보가 시각적인 정보로 바뀌어요. 작가가 의도한 이야기에 도달하기 어렵지만요.

작품 외에 시각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집중해서 생각해야 해서 영화만 집중할 수 있는 영화관처럼 단순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적당히 어두운 곳이어야만 다른 것이 눈에 안 들어와서 집중할 수 있어요. 소리가 없더라도 영상이 쉴 새 없이 움직이니까요. 저는 움직임 자체가 리듬이고, 보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상 안에서 움직임과 변화가 다채로운 것을 좋아해요. 영상이나 시각적인 정보 없이 소리만 들어야 하는 상황일땐 오래 머물지 않게 되어요.

원정: 소리를 담지 않은 시각적인 요소 자체도 움직임이나 변화가 다채로우면 좋다는 거군요. 예전에 은설 씨가 저에게 들려줬던 ‘백색장면’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배경소리가 되듯이, 시공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배경소리를 백색소음이라고 하는데, 청인이 백색소음을 계속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은설 씨는 ‘백색장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비 내리면 빗방울이 면적에 닿아 터뜨리는 모습과 우산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빗방울이 맺히는 창문의 풍경이 백색장면의 예라고 하셨지요. 움직임도 소리라는 이야기를 또 다시 이해하게 되네요.

마지막 질문드립니다. 최근 소리를 만지면서 접근하는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는 작업을 할 때 은설 씨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은설: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내다 보면 항상 어디에 가든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려요.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무덤덤하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어요. 되게 큰 진동이 지나갈 때 청인에게 느꼈냐고 물어보면 너무나 익숙한건지 진동이 지나갔는지 모르더라구요. 바닥에 누워있으면 자동차가 지나 다녀서인지 땅이 꿀렁거림 같이 어떤 영향을 받아 울리는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작은 지진같은 진동을 많이 느껴요.

우리가 먹고 지낼 때 사용한 물건, 가구, 건물 등 진동들이 숨어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으로 작업하게 됩니다. 제 신체에서도 많은 진동들이 숨겨져 있고 자신이 진동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어서 언젠가 그것을 들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리로 들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촉각적인 만남, 그러니까 기대어 보거나 만져서 존재감을 느껴 보면 어떨까? 단순히 진동을 감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진동과 커뮤니케이션 하려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촉각적인 진동외에도 사물의 형태, 크기 등을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시각적인 소리풍경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습니다.

원정: 시각적인 소리풍경이라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은설: 네, 저에게는 아까 백색장면 이야기처럼 시각 자체가 청각인 건데요. 여러 개의 소리가 모여진 덩어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청인들은 시각과 청각을 반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차이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작업하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김은설

김은설은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소통한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엇갈리는 일상에서 생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고 있다. 듣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듣지 못하는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면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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